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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산행 9 - 지리산 큰세개골(대성골)과 영신대

  • 구재삭
  • 2014-12-26 17:05:38
  • 조회 90
  • 추천 0

1951년 말 지리산 일대는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북괴의 남침 패잔병과 좌익들은 북으로 탈출로를 잃고 지리산 일대로 속속 모여들어 병력화를 이루어

전남, 전북, 경남 유격대와 남부군이라는 이름으로 후방에서 경찰을 괴롭혀 왔습니다

이들 중 이현상이 이끄는 남부군은 500여명의 세를 이루어 지리산 빨치산의 중심에 있었으며,

남로당의 전위부대 역할로서 박헌영, 이승엽, 이강국 등이 김일성의 북한노동당에 세를 뒤지지 않기

후방에서 유격활동의 고비를 늦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남부군은 1951년 12월 하동군 악양면을 공격하기 위하여 지리주능선에서 남으로 너무 멀리 내려왔다가

시루봉 부근에서 퇴로를 차단당하면서 커다란 손실을 입고, 거림 도장골부터 서쪽으로 뱀사골까지의 남북

능선 주변에서 은신을 하다가 1952년 2월 백무동 큰새골 부군에서 마천에서 올라오는 국군에 의해

세석 주변으로 쫒겨가다가 ( 이는 국군의 대대적 토벌작전으로 다른 유격대도 그리로 포위됨 )

세석평전과 큰세개골 사이에서( 아마도 지금의 영신대 주변으로 추측됨 ) 좌우 주능선과 남부능선에서

올라온 1만명의 토벌국군에 의해 포위되면서 괴멸의 막이 올랐습니다

이 전투에서 지리산 공비들의 대부분 전력이 사살되었는데 토벌대는 공비들을 대성골 하류로 몰아내려

당시 국군토벌대 시령부가 있는 화개천변에서 모두 몰살하려는 작전이었습니다

하지만 남부군 이현상은 은 큰세개골에서 아래로 퇴각을하다가 서쪽으로 작은세개골로 넘어 덕평능선까지

넘어  빗점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몰살을 면했다고 전해집니다

( 이후 묘향대 아래계곡으로 은신하였다 함 )

이 전투에서 대성골은 이념의 반대편에 선 자들이 피바다를 이루었으며 수천이 죽었다는 설까지 나돌

정도였는데, 남부군 빨치산의 전술적 본거지였던 거림 도장골과 더불어 남부군의 흔적이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오늘은 당시 전투현장이었던 큰세개골과 영신대를 찾아가봅니다

 

2005년 5월 29일 작성

 

아침 6시 15분 경 쌍계사 앞 주차장에서 산죽님이 먼저와 라면과 김밥을 준비해주셔서 또 신세를 지고,

7시 의신마을에서 대성골로 출발을 합니다

오늘 처음 들국화님께서 산행참가를 해주셨습니다

 

물앵두가 너무 맛잇게 익었습니다

 

산행들머리 벽소령산장앞을 막 통과를 하려는데 관리공단직원이 막 출근을 하였습니다

1분 차이로 떳떳하게 통과를 하게 되었습니다. 들국화님께서 모든 입장료를 내어주시고..

 

대성골로 가는길에 찔레꽃 향기가 코를 그야말로 찌릅니다

 

 

이후 대성골의 본류를 만나고 산행 1시간여 지나 대성골 마을 가게집앞을 지납니다

 

대성골의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본격적인 계곡산행이 시작됩니다 

멧돼지를 닮은 바위

 

30여분을 오르니 작은세개골 입구의 철다리가 나옵니다

계곡옆으로 좀 가파는 길을 계속 올랐습니다

잠시 쉬면서 들국화님께서 보따리를 풀으시는데 좋은게 많이 나옵니다

출발 2시간여를 지나 큰세개골 입구 다리를 건넙니다

사진찍는 사이 약간의 우왕좌왕이 있습니다. 큰세개골은 바로 탈수가 없고 5분여를 더 올라 좌측으로

들어가 계곡본류를 건너서 3분정도 계곡길을 걷다가 이후 끝까지 계곡본류 산행을 합니다

계곡 우측으로 좁은 협곡이 나잇는데 아마도 음양수샘쪽에서 내려오는 것 같습니다

이끼가 잔뜩붙은 작은 물줄기가 계곡 우측에 있습니다

계곡은 좁아졌다가도 다시 넒어어지기를  계속 반복을 합니다

 

마침내 대성폭포가 보이고....

맨 아래단 폭폭의 모습입니다

 

두번째단 폭포

 

모두들 감탄하여 바라봅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또 다른 폭포가 계속 이어집니다

 

마지막 폭포 -  대성폭포는 4단인것 같습니다

4단 폭포위 위에올라 - 폭포의 높이는 한 단이 15-20미터 정도되는것 같습니다

 

림보를 능가하는 솜씨

이후 좁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계곡이 넓어집니다

 

큰세개골 본류는 꽤나 길군요

 

본류가 거의 끝날부렵 표시기를 보고 우측으로 열린 산행길을 이용하여 영신대에 올랐습니다

영신대까지는 원시림 속의 희미한 산길로 빡센 오름입니다

멀리 영신대 좌측의 암벽이 보입니다

 

그리고 지리산에서 가장 기운이 세고 아무나 접근이 어렵다는 영신대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 5시간 30분

 

좌측은 칠선봉 주능선 가는길, 우측 윗길은 영신봉 가는길, 우측 아랫길은 석문과 공터가 있습니다 

영신대의 암벽

영신대를 들어가는 입구인 석문

 

먼저온 한 팀이 이곳은 아무나 못오는 곳인데 어떻게 그길로 올라왔냐는 묘한 소리를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그 앞에서 취사를 합니다. 같이 있기가 민망해서 절하고 영신대를 빠져나옵니다

 

마침내 칠선봉 가는 주능선으로 올라왔습니다 - 6시간

이 곳은 칠선봉에서 영신봉쪽으로, 영신봉 직전의 암봉( 아마 1556 봉 )바로 앞에 있는 통로입니다

주능선에서 봤을 때 좌측이 1556봉, 그뒤가 영신봉.  우측봉우리 아래가 영신대

 

점심은 길옆에서 곰취쌈밥으로 먹고

 

 

칠선봉을 지나

 

전망바위에서 주능선 구경을 잠시합니다 

좌측에 천왕봉이 보이고  앞 봉우리가 영신봉, 촛대봉은 그 뒤로 조금 보입니다

 

점점 아침에 성삼재에서 출발한 단체 산행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벽소령을 넘어와서 그런지 지친 기색들이 역력하군요

발걸음을 서둘러 덕평봉 선비샘에 오니 출발한지 8시간이 되었습니다

 

하산은 선비샘아래 비박터를 지나 덕평능선을 따라합니다

덕평능선 좌측으로 작은세개골이 보입니다

50여분을 내려오다 봉우리를 우측에 두고 우회한 다음 갈라지는 능선에서 우측길로 내려오니

멀리 의신마을이 보입니다

 

 

하산때부터 계속 번개와 천둥이 칩니다.  높은산에서는 천둥소리가 더 크군요

소나기가 내려 나뭇잎에 떨어지는 소리가 소란하더니 다행이 그쳤습니다

  

 

의신마을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장미가 담장에 걸려있는 예쁜집이 있습니다

 

하산지점이 처음 산행을 시작한 벽소령산장, 아침에 관리공단 직원한테 입장료 낸곳이군요

새가슴 한번 또 되었습니다 - 10시간 15분 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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